큰숲 맑은 샘/큰숲 구약성경개관

그들이 바알에게 절했던 이유

안산차도리 2010. 5. 17. 16:15

그들이 바알에게 절했던 이유

 

성경을 읽다보면 우상숭배에 바지는 이스라엘 백성을 빈번하게 발견한다.

'왜 저렇게 한심할까? 나도 잘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님 한분만 꾸준히 잘 믿는데...'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꽤 있을 것이다. 허나 우상 숭배는 어떤 신이 참 신이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신이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 더 납득할 만한 설명을 주느냐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에 시달린다고 치자. 성경과 선지자들은 백성에게 우주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설명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징계로 임하는 가뭄에 대해 경고한다.

그런데 바알신화는 보다 자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뭐라고 말하는지 바알신화를 한번 들어보자.

 

"바알은 비의 신이다. 그런데 죽음의 신인 '못'이 막강한 바알에 대해 늘 반란을 꿈꾼다.

 어느 날 못이 바알을 거짓 초청하여 지하 세계에 감금한다.

 그러자 바알이 몰고 다니는 비와 바람도 감금당한다. 그 결과 땅에 비가 내리지 않게 된다.

 그러자 바알의 여동생이자 아내인 '아낫'신이 지하세계로 가서 '못'신을 죽이고 바알을 구출한다.

 동시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바알과 아낫이 부부관계를 가지면 땅에 풍년이 든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1년 중 가뭄때는 바알이 납치 당할 때이고 비가 오면 아낫에 의해 구출된 때이다.

그들이 부부 관계를 잘하면 그 해 풍년이 된다.

이처럼 1년 농사는 신들의 반복적인 싸움을 통해 이루어진다.

 

21세기 현대인들이 들으면 동화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설명보다는, 바알, 못, 아낫 등이 등장하는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더 그럴듯 해 보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바알 이야기가 하나님의 주권보다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비가 안오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배경 설명뿐만 아니라, 바알을 구출하여 비가 내리고 풍작이 이루어

지게 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알에게 하는 제사는 비가 내리게 해 달라는 제사였고 아낫여신과 부부관계 잘 하라며 제단

앞에서 사람들이 성 관계를 하는 의식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설명으로 비추어진 바알 신화는 둘째치고라도 그 제사 '의식' 자체는 아주

매혹적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존재하는 굵직한 이단종파들의 교리를 잘 살펴보면 나름대로 상당한 합리성과 논리적 전개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진화론적 과학 이론을 적당히 잘 섞어 쓰기도 한다.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그런 종파의 교리에 매혹되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보다 더 '합리적'으로 들린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배제하고 인생을 설명하며 철학, 가르침, 방법 등에 의지하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의

핵심이다. 내가 소원하고 불안해하며 궁금해하는 바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보다 더 그럴듯한

설명과 방법을 제시하는 쪽에 마음을 기댄다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현대인들은 훨씬 더 합리적이고 다양한 우상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알수는 없다'는 뻔하고 답답한, 앞이 꽉 막힌 설명대신 제시되는,

'내 맘에 쏙 드는, 내 인생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축복 계약서'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세벨의 망령이다.

 

*이세벨 - 두로왕의 딸, 북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내, 이스라엘에 최초로 바알을 소개한 자.

 

큰숲맑은샘 2008년 4월호 성경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