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숲 맑은 샘/큰숲 신약성경개관

생명의 떡

안산차도리 2010. 4. 25. 23:58

생명의 떡 

김성겸 목사

 

생선 두 마리와 떡 다섯 조각으로 5,000명 이상의 무리를 먹이신 예수님의 표적을 보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 선지자'라 불렀다(요 6:14). 성경에 예언된 그 분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분명히 '표적(sign)'을 보았다. 예수께서 전파하셨던 하나님 나라,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라는

표적을 보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그 선지자라고 부르며 몰려오는 군중을 피하셨고, 차후에 다시 만난 무리를 향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라고 말씀하셨다.

 

표적은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보여주는 도구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에는

반드시 표적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표적은 기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 공동체가 세상을 향해 보여주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관한 모든 것을 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병 고침, 기적적인 물질적 공급(광야 시절 이스라엘에게 공급된 만나, 오병이어 등),

극적인 기도 응답 같은 초자연적인 표적은 물론 빛과 소금의 행실(마 5:16)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의 표적이 교회 공동체 안에 일어난다.

교회 공동체는 왕이신 하나님이 좌정하여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이다(엡 2:21~22).

 

그러나 인간은 표적이 가리키는 목적보다 표적 자체를 목적으로 삼곤 한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을 한번 맛 본 사람들은 그와 같은 기적을 체험하고자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예수님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혹 주실지도 모르는 기적의 떡이 목적이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땅에

있는 동안 누리는 복을 표적이 아닌 목적으로 여겨 천국보다 이생에서의 자랑을 더 사랑하곤 한다.

또한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하나님 나라의 표적이 아닌 목적으로 삼아 예수님보다는 윤리와 선행만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도 표적인 줄 모르고 그저 떡을 또 한번 먹을 수 있을까 해서 몰려 든 무리들에게

생명의 떡, 즉 영생의 말씀을 들려주셨다(요 6:22 이하).

효과는 파격적이었다.

무리는 물론 제자들 중 많은 이들도 영생의 말씀이 아렵다며 떠나갔다(요 6:66).

그러나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표적이 가리키고 있는 '영생의 말씀'을 붙잡았다(요 6:68).

기적의 떡을 맛보는데서 멈추는 인생은 불행하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는다는 말은 들을지언정(막 12:34) 그 나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다.

기적의 떡보다 더 큰 생명의 떡을 거머쥔 사람이 영원히 복된 사람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큰숲 맑은 샘 2010년 3월호 이달의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