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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트리베, 사도 바울이 진리를 담기 위해 선택한 그릇

안산차도리 2010. 2. 5. 12:06

디아트리베 

사도 바울이 진리를 담기 위해 선택한 그릇

 

마서가 기록된 형식을 일컬어 '디아트리베'(diatribe)라고 한다.

그리스어 '디아트리베'는 한국어로 정확히 번역되기는 어렵지만 대화 논법, 강화, 세미나, 짧은 논설 등

여러가지로 번역 할 수 있다.

디아트리베의 원조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체 강의이다.

디아트리베 형식이 왕성하게 사용된 것은 BC 1세기 초부터 서기 2세기 초에 걸친 문헌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유대교 설파에 앞장 섰던 필론, 네로의 스승이었던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디아트리베

문체를 적극 활용했다.

이런 사실은 로마서 저작의 역사적 신빙성을 더욱 뒷받침해 준다.

 

로마서에서는 분명히 드러나는 디아트리베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저자들은 가상의 대화 상대 또는 가상으로 제기된 질문들을 들어 대화를 이어간다.

예를 들어 2장 2~4절에는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저지르는 가상의 대상이 등장한다.

여기서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말하고 있지만 로마교인을 모두 불의를 저지르는 자로 취급한 것은 아니다.

또한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바울의 1차적 청중도 아니다.

물론 로마서의 1차적 청중 중에는 그 말씀에 찔림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3장 1절은 가상 질문의 예이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할례의 유익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평소에 로마 교인들이 궁금했던 사안

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바울이 말씀을 전개하면서 이를 듣고 있는 로마교인들이 혹 떠올릴 수도

있는 가상 질문이라고 하겠다.

또한 청중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그 다음 주제를 끌어오기 위해 청중을 주목시키는 질문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7장 1절이 그러하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

 느냐.' 

6장에서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합하여져서  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상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7장에서는 이 주제를 율법과 관련하여 발전시킨다. 이런 주제의 전환을 위하여 던져진 질문이 바로 7장 1절

이다. 이렇게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을 취하다보니 로마서는 어떤 측면에서 교리문답서의 구조를 취한다.

진리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이 제시되는 구조가 로마서 전체에 드러난다.

이 구조는 로마서의 핵심  주제인 구원에 대해 가르치는데 매우 적합하다. 

청중의 마음을 환기시키는 바른 질문들, 그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대답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구원에 대한

진리를 정확하게 깨우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디아트리베는 구원 그리고 구원 받은 성도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의문들, 심지어 이단의 공격적 질문

들을 미리 예측하고 해답을 제시하는데 효과적인 형식이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화법은 성도를 향한 설득과 권고뿐만 아니라 진리의 수호와 변증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오늘날 디아트리베가 사용되지는 않지만, 디아트리베가 갖는 중요한 특징은 오늘날 교회에게도 중요하게

다가온다. 

진리에 대하여 대중을 환기시키는 '바른 질문 던지기'가 그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질문하기를 꺼려하는 듯하다.

상대주의와 다원화주의 그리고 개인주의가 심화된 세상이어서인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질문이 많이

무뎌져 있다.  질문이 무뎌졌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인식과 진리를 향한 갈망이 약화되었다는 반증이다.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기에 급급함을 뜻한다.

그들을 깨우기 위한 날카로운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할 사명이 교회에 있다(디아트리베가 '독설적 논쟁'으로도

번역될 수 있음을 알라).

질문에 반응하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해답을 제시하면서 세상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빛을 등경 위에 두어야 방 전체가 환해지듯이 말이다(마 5:15).

물론 사람의 섬김만큼 몸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상호 작용도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교회는 지속적으로 세상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자기 할 말만 늘어놓는 진리의 제시가 아니라, 빛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암흑에 처한 시대를 일깨우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것이다.

 

큰숲 맑은 샘 2010년 2월 이달의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