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숲 맑은 샘/성경속의 여인들

예수님의 발을 씻긴 마리아

안산차도리 2009. 6. 16. 15:33

예수님의 발을 씻긴
마리아

 

여우 같은 동생 마리아

"아니, 이렇게 바쁠 때 이놈의 기집애는 어디 간거야?"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나오는 콩쥐팥쥐, 장화홍련처럼 성경에도 유명한 자매가 있습니다.

바로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나사로의 남매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비롯하여 그의 가족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특별히 나사로의 집에 머무르실 정도로 관계가 각별했지요.

무슨 반찬을 내놓아야 할까. 구석 구석 쌓인 먼지를 다 닦아내고 이불 빨래도 해야 하는데...

언니인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마르다의 걱정은  떠나지 않고, 손과 발은 쉴 새 없이 분주했습니다.

마르다는 당장 뒤집개로 동생의 머리를 한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마리아도 함께 일을 돕도록 한소리 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다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마르다야, 네가 나를 섬기기 위한 여러가지 일로 정신없이 분주한 것은 알고 있지만,

 마리아는 지금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을 선택하였고, 그것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구나."

혹시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편애하시는 걸까요?

자매의 묘한 질투심을 자극하면 안된다는걸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된장녀 마리아

이천원짜리 밥을 먹고, 사천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을 일명 '된장녀'라고 부릅니다.

형편에 맞지 않게 사치를 부리며 허세를 떠는 사람을 겨냥한 일종의 비아냥거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르다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여인이었습니다.

혼자 음식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어찌보면 미련해 보일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마리아는 좋은 것만 하려고 하고, 손발을 부지런히 놀릴 줄 모르는 얄미운 캐릭터입니다.

항상 궂은 일은 마르다 몫이고, 마리아는 좋은 자리에 앉아 얼굴만 내밀어 생색을 내려고 합니다.

문둥병에 걸린 시몬의 집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마르다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마리아는 생색내고 싶었던지 삼백데나리온이나 하는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에 쏟아

부은 적도 있습니다.

'아니, 그 돈이면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이런 된장녀 같으니라구!'

다른 사람들 눈에 마리아는 신약시대의 된장녀로 보였습니다.

가롯 유다를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은 마리아가 형편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린다고 생각했지요.

아마도 마리아는 귀가 간지러웠을겁니다.

언니 마르다에게는 얌체 같은 동생으로, 제자들에게는 된장녀로 찍혔으니까요.

그러나 마리아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얄미운 캐릭터도, 된장녀도 아닙니다.

 

예비하는 마리아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와 그의 남매를 모두 사랑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슬피 우시며 마음 아파하셨고, 결국에는 그를 살려내셨지요.

마르다가 예수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고마워 하셨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잘 듣고 있는 모습도 어여삐 여기셨습니다. 

누구를 편애하거나 미워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또한 예수님을 섬기고자 했던 마음은 동일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했던 마르다나,

예수님 곁에서 시중 들고 싶었던 마리아의 마음은 동일했습니다.

다만 예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 둘의 우선순위가 달랐다는거지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예비하며,

비싼 향유 옥합으로 발을 씻겨 드렸고,

마르다는 현재 상황에만 급급하여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마리아는 얌체 같은 여우도, 된장녀도 아닌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교제하고 섬기기 원했던 예비자였습니다.

 

큰 숲 맑은 샘   2009년 6월호에서 이수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