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숲 맑은 샘/성경속의 여인들

목숨도 두렵지 않은 다윗바라기 미갈~!

안산차도리 2009. 3. 6. 11:59

   ◐목숨도 두렵지 않은 다윗바라기 미갈

 

목동 다윗과 공주 미갈  

리앗을 돌팔매질로 KO시킨 다윗은 어느 샌가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용맹함을 높이 산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을 해댔지요.

"돌팔매질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육군 대령 해볼래?

아니, 차라리 부대 하나를 맡길 테니 대장은 어때?" 그뿐이 아닙니다.

발 빠른 중매쟁이들은 앞 다투어 참하고, 집안 좋은 아가씨들의 사진을 다윗 앞에 내밀며, 한번 만나보라고 성화입니다.

모든 상황이 촌뜨기 목동 다윗에게는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어느 영화배우의 말마따나 다윗이 골리앗을 해치울 수 있었던 건,

하나님께서 다 차려놓은 밥상에 다윗이 그저 숟가락만 얹어놓았을 뿐이었으니까요.

순진한 청년 다윗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왕 사울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이래봬도 사울 역시 하나님께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간택당한 몸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나라의 분위기는 자신이 아닌 다윗을 향하고 있으니 사울의 속이 뒤집어질 만도 하지요.

다윗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질투했던 사울은 자신의 첫째 딸 메랍을 빌미로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가할 것을 다윗에게 권유합니다.

하지만 메랍은 다윗의 취향이 아니었는지, 거절하고 말지요.

집요한 사울이 다시 한 번 다윗을 부릅니다.

 "이봐, 다윗! 내 둘째딸 미갈 알지? 어디 하나 빠지는데 없는 현모양처감이라서 재벌 2세와 결혼시키려고 했는데,

네가 블레셋 사람 백 명만 해치우면 미갈과 결혼시켜 줄게. 어때? 관심 있어?"

아무래도 미갈은 다윗의 이상형이었나 봅니다.

미갈을 얻으려면 백 명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적군 이백 명의 가죽을 척 하니 사울 앞에 내려놓지 않겠습니까.

적을 해치운건 좋아할 일이지만 사울은 울고 싶었을 겁니다.

죽으라고 내몰았더니 도리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칭송을 받고, 사랑하는 둘째딸마저 빼앗기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는 평강공주 아버지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사울은 눈물을 머금고 사랑하는 딸을 원수 같은 촌뜨기 목동 다윗에게 시집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갈은 좋아서 입이 함지박만틈 찢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다윗이 자신의 신랑이 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사랑을 택하자니 어버지가 울고...

한솥밥을 먹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다윗은 사울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소문을 듣자하니 민심은 더욱더 다윗에게 향하고 있어 사울의 마음은 하루도 편치 않았지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는 것을 사울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자격지심에 질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노이로제로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마침내 이성을 잃은 사울은 사위건 뭐건 간에 다윗을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에 그의 침실에 군대를 보내고 맙니다.

여자의 직감은 때로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고 하지요.

야심한 밤, 이상한 소리에 깨어 창밖을 내다 본 미갈은 본능적으로 알아챘습니다.

아, 아버지가 나의 사랑하는 남편을 죽이려 하는구나. 아버지를 택하지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택하자니 아버지가 울고....

그 짧은 순간, 미갈은 머릿속에서 아버지와 다윗을 번갈아가며 수천 번이나 죽이고 나서야 결정을 내립니다.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습니다. 자식 놈은 아무리 금지옥엽으로 키워도 짝 찾으면 그만이라더니,

진짜로 아버지를 속이고 다윗을 피신시키는 미갈입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사랑 

미갈은 영리한 여인입니다.

다윗을 피신시켜놓고 순순히 자백하지는 않지요.

도망가도록 두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윗에게 협박당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그 대가로 미갈은 다른 남자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다윗을 피신시켰을 때 미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다윗처럼 용맹한 남자는 금방 자신을 구출해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미 미갈에게 있어서 다윗은 남자와 남편을 뛰어넘은 우상과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목숨까지도 내놓고 다윗을 지킬 수 있었던건, 다윗에 대한 신뢰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도 다윗은 오지 않았습니다.

낯설었던 새 남편이 점점 친숙해질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진짜 남편은 야속하게도 코빼기도 안보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해버린 삶에 점점 익숙해질 즈음, 지쳐가는 미갈 앞에 다윗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예전보다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말입니다. 미갈은 감격합니다.

게다가 다윗은 군대 합병의 조건을 오직 '미갈과 다시 함께 살 수 있다면'이라는 로맨틱한 대사를 제안합니다.

이건 춘향이가 암행어사가 된 이 도령을 만난 것 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다시 만난 다윗과 미갈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다윗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미갈이 넘지 못한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었고,

둘째는 남편에 대한 신뢰감이었지요.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오랫동안 블레셋이 가지고 있던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감에 능한 다윗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지요.

거의 살이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반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다윗을 좋아하는 마음만큼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던 미갈은 남편을 있는 대로 비꼬아댑니다.

"아예, 다 벗고 추지 그래요? 왕이 되가지고 품위 없게 뭐하는 짓이예요"하고 빈정거렸죠.

목숨을 걸고 지킨 사랑하는 남편이 눈앞에 있는데 미갈이 할 수 있었던 말은 겨우 그뿐이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났기 때문이지요.

떨어져있는 동안 다윗은 인간의 사랑 대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배웠고,

미갈은 오로지 다윗만 기다리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같았지만, 그 방법이 달랐기에 다윗과 미갈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가장 큰 해피엔딩이라는 진리를

미갈은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  큰숲맑은샘 2008년 8월호 中  이수영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