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인도(India)

뿌네(PUNE)-간디 기념관(Ghandi National Memorial)

안산차도리 2013. 9. 3. 17:34

뿌네(Pune)에 처음 간 날 6월 8일 혼자서 간디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다른 포스코직원들은 피닉스몰(Pheonix mall)에 쇼핑하러 갔습니다.

간디 박물관이라고도 하지만 영문명을 보면 국립간디기념관이라고 해야 할 듯...

입구입니다.

간디기념관(Ghandi National Memorial)

Nagar Road, Kalyani Nagar

Pune, MH, India

여기도 큰 반얀트리가 있네요~^^

저 멀리 간디 기념관이 보입니다.

 

뿌네(Pune)시의 북쪽, Mula강을 건너  있는 국립 간디 기념관.

그러나 이 기념관의 원래 이름은 "Agakhan Palace"입니다.

이곳은 술탄 아가 칸 3세1892년에 지은 궁전이며 주로 여름에 사용하였다니

여름별장인 셈이네요,

이 거대한 궁전은 1969년 아가칸의 후손에 의해 인도정부에 기증된 후

간디를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도 뿌네의 날씨는 선선하다 하지만

저에게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헉헉거리는 정오입니다

중학생이라는데 사진을 같이 찍자네요...

ㅋㅋ~

사진이 맘에 안 든다고 15분 가까이 까르르르~하고 웃으면서

훈남 모델을 못가게 하네요^^

인도에 있는 간디 기념관중 큰 규모에 속하는데,

한때 간디가 2년간 구금된 곳이기도 하고,

그의 아내와 비서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유서 깊은 곳이네요.

외국인은 입장료가 100RS(루피)이고 인도인은 5RS(루피)입니다.

입장료 외국인 차별은 인도 어디를 가나 똑같습니다.

처음 만난 큰 전시장 중간에 간디의 청동 조각상이 있습니다.

조각상에 대한 설명를 미처 못 봤네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로,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 유학을 다녀왔으며, 인도의 영국 식민지 기간(1859~1948) 중

대부분을 영국으로부터의 인도 독립 운동을 지도하였다.

 

영국의 제국주의에 맞서 반영(反英) 인디아 독립운동과 무료 변호,

무저항 비폭력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종교는 부모의 영향으로 힌두교이다.

인도의 화폐인 루피의 초상화에도 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드디어 영국에게서 독립을 했으나,

이슬람교도는 파키스탄으로, 힌두교도는 인도로 가는 민족분열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종교갈등으로 수만 명이 학살당하자,

간디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일하였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모습은 극단적 보수파 힌두교 신도들에게는

이슬람교도를 편드는 것처럼 보였으며,

결국 1948년 1월 30일에 뉴델리에서 열린 저녁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반이슬람 힌두교 급진주의자 나투람 고드세에게 총을 맞아 암살당했다.

간디 일생에 대한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구요

유화도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비폭력운동 간디의 흥미로운 부조도 만날수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와 그의 아내 카스투르바이(Kastur Ba)

1942년부터 1944년까지 2년간 이 방을 사용했다는군요.

그의 아내 이름이 여기서는 "KASTUR BA"라고 적혀 있고

다른 곳은 "KASTURBAJI"라고 적혀 있네요.

간디와 그의 아내를 그린 유화가 보이네요.

그 밑이 간디가 사용한 침대인가봅니다.

2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농촌을 둘러보던 간디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휘말려 황폐화된 농촌의 모습을 보고

을 놓고 말았다.

영국은 인도의 목화를 헐값으로 산 다음

그것을 실로 만들어 비싼 값으로 인도에 되팔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영원히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간디는 그 대안을 강구했다.

 

"그래, 우리들이 직접 실을 뽑으면 비싼 영국 제품은

지 않아도 되겠지, 물레를 돌리는거야."

 

그때부터 간디는 여기저기 사람들을 모아놓고

물레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했다.

그 뒤 농민들 사이에 물레가 급격한 속도로 퍼져

갔고 집집마다 물레 돌리는 소리가 울려 퍼져 나갔다.

기념관을 구경하고 뒤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드넓은 정원이 있구요...

명상(?, Samadhi)으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술탄 아가 칸 3세가 사용한 여름 궁전이라고 하니

아름답네요.

그런데 인도 유적지를 몇군데 가보지는 않았지만

관리가 좀 부실한 것 같네요...

간디가 명상(?, Samadhi)으로 가는 이 길을 밟고 지나갔다네요. 

간디 기념품, 책 등을 파는 곳입니다.

간디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날 한 모자(母子)가 찾아 왔다.

어머니가 간디에게 부탁하기를 “존경하는 선생님 내 아들을 좀 도와주세요.”했다.

 간디가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예 도와드리고 말구요. 무었을 도와 드릴까요?”하고 물었더니 그 어머니가 말했다.

“선생님 내 아들이 설탕을 너무 좋아해요.

설탕을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하니

내 아들에게 설탕을 끊으라고 말씀해 주세요.

아들이 아무 말도 안 듣는데 선생님 말씀은 듣겠답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 대답을 들은 간디는 한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내가 아드님을 도와 드릴테니 보름 뒤에 다시 찾아와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그들 모자가 보름 뒤에 다시 찾아 갔더니

아들에게 설탕은 몸에 해로운 것이니 설탕을 끊도록 하라고 타일러 주었다.

간디의 말을 듣고 아들은 그 날로부터 설탕을 완전히 끊게 되었다.

 

얼마 간의 세월이 흐른 후 그 어머니가 다시 간디를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 처음 찾아 왔을 때에 아들에게 타일러 주시지를 않으시고

왜 보름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셨지요?”하고 물었다.

 

간디가 답하기를

 

“사실은 나도 그때 설탕을 좋아하여 많이 먹는 편이었는데

아드님을 도우려면 내가 먼저 끊는 모범을 보이고 난 후에야

아드님에게 끊으라고 권할 자격이 있어지겠기에

내 스스로 먼저 끊는 기간을 보름을 잡은 것이지요.”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아~ 우리 모두가 이러한 자세로 삶을 산다면...

간디의 무덤
간디가 죽은 후 그의 재는 조금씩 나누어져

전국 곳곳에 안치되었다는데
여기에도 이렇게 그의 재가 모셔져 있습니다.

 

HERE REST THE ASHES OF MAHATMA GANDHI

간디 비서와 평생동지였던 간디 아내 카스투르바이(KASTURBAJI)의 무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주요 도시마다 어디를 가도 간디 기념관은 있지만

좀 더 관리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잔디 밭 나무그늘 아래에는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네요.

아쉬운 발걸음에 한번 더 뒤를 돌아보고 간디기념관을 나왔습니다.

도로 표지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이렇게

공익 광고판(?)이 있네요...

"우리의 환경을 깨끗하게, 푸르게"

뿌네 간디 기념관 바로 앞 도로입니다.

횡단보도는 너무 멀리 있고 차를 피해서 건너기가 힘드네요...

바로 앞 횡단보도에 도로 복구 공사하고 있는 모습.

아스콘 땜빵 하느라 냄새가 지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