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캘리그라피 출처는 임정수디자인>
옛날에 덕망이 높은 한 승려가 있었습니다.
불량한 아들 때문에 속을 썩고 고생을 하던 어떤 아버지가 그 스님을 찾아가
아들의 교육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는 그 아들이 도무지 아비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매사에 어긋나기만 하니
자기로서는 도저히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집에 와서 침식을 같이 하며 그 아들로 하여금 듣고, 보고, 깨닫는 가운데
스님의 감화를 받아서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스님은 생각끝에 그 부탁을 받아들이고
이제 그 고약한 소년과 같은 방에서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일이 가고 두 주일이 갔다.
처음 하루 이틀은 제법 얌전하게 굴던 그 소년은 또 다시 나쁜 짓만 골라서 하고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지만
스님은 그에게 단 한 마디의 꾸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달의 세월이 흘렀으나 역시 아무런 변화도 없고 스님은 그대로 침묵을 지켰을뿐
입니다.
그 불량자의 아버지도 차차 스님의 무관심에 대해 의심 뿐 아니라 불만을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기약한 3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이 스님은 그 집을 떠나 절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불량자 아들은 꾸중만 매일 들으리라 생각했다가
뜻밖에도 잔소리 한 마디 듣지 않은 사실을 한편 다행하게 생각하고
한편 의아스럽게 여겨서 그날은 특별히 밖에도 나가지 않고 떠나가는 스님을
전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스님은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게 되었는데,
그는 그 불량자 더러 신들매를 좀 매줄 수 없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 소년은 작별하는 이 마당에 그만한 봉사야 못하랴 생각하고 허리를 구부려
스님의 신들매를 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등이점점 뜨거워지지 않겠는가?
소년은 놀라 스님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손등에 떨어진 것은 스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석 달 동안 그 불량한 소년에게 단 한 마디의 꾸중도 하지않은 그였으나
얼마나 밤낮으로 그 어린 놈을 생각하였으면
이별의 자리에서 그처럼 눈물이 쏟아졌겠습니까?
손등에 쏟아진 그 눈물 때문에 이 불량자는 뉘우치고 삶의 바른 길을 걷는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흔하게 쓰기는 하면서도
이 말의 진실함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훌륭한 방법입니다.
방책을 아무리 열심히 강구하여도 정성이 부족하면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믿습니다.
보는 스승의 정성어린 눈길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눈초리에 감격하였으리라.
술책이나 권모는 사람의 참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오직 지극한 정성만이사람의 중심을 변화시킬 수 있는것 같습니다.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조금씩 저며 들어 가는 도끼질에 큰 떡갈나무를 쓰러 뜨린다.
작은 물방울이 소낙비를 이룬다.
능력이 없는것을 두려워 말고 끈기 없는것을 두려워해라.
다 같은 말이 아닌가요?
서울교대 교육대학원 계숙희 교수 페이스북 강의
'페친님들과 공개강의에서'
2012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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