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숲 맑은 샘/셀에 대한 이야기

가난에는 이유가 있다.

안산차도리 2010. 5. 21. 09:55

가난에는 이유가 있다.
황대연_ 시화 한가족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신대원 시절 함께 공부했던 P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P목사님은 늦게 신학을 하셔서 지금은 나이가 육십을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그는 서울 변두리 아파트 단지의 상가 교회에 부임하셔서 벌써 5년째 목회를 하십니다.

 

말이 좋아 부임이지, 교인 숫자가 장년 50여명이 된다는데, 이상하게도 그 교회는 목사님의 사례비

하나 변변하게 챙겨 드리지 못하는 미자립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P목사님은 자녀들이 다 장성하여 나름대로 일을 하면서 살아가므로 자녀들의 교육비가 들지

않았고, 이렇게 저렇게 동기나 선후배가 후원한 팔십여만원의 생활비로 두 내외분이 교회를 섬깁

니다.

 

교회가 자리한 곳은 도시계획과 개발로 인해 이주해 온 철거민과 장애인을 위한 영구 임대 아파트

지역입니다. 주민들을 위해 교회의 할 일을 찾던 P목사님께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을

열고 좋은 대학을 나온 후배 전도사들을 섭외하여 경제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

했습니다.

물론 전도사님들은 무보수 자원봉사입니다.

 

저를 한번 보고 싶다고 시간 좀 내라기에 그가 좋아하는 롤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차 한잔을 놓고 잠시 마주 앉아 반가운 마음을 나누는데,

한동안 롤 케이크를 무심히 바라보던 P목사님은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황 목사, 내가 5년동안 여기서 목회를 하는데 말이야. 이 동네는 참 이상한 동네야."
   "예?"
   "옛 말에 가난에는 이유가 있다더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아.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공부방을 열면서 그렇게 애를 쓰고, 내 지갑 털어서 간식 준비하고,

    애들 밥해 먹여도 누구하난 감사하다는 사람이 없어.

    더운 여름, 목사님 애쓰신다며 오백원짜리 음료수 하나가 없다니까.

    아니 애들 간식 찬조는 커녕 오히려 교회에 오면 어떻게 된 교인들이 냉장고부터 열어서 뭐라도

    하나 더 들고 나가려고 해...

    감사할 줄 모르고, 남에게 줄줄 모르는 사람들... 그러니 어디 복을 받겠어?

    처음에 가진게 워낙 없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애들이 나이키 운동화에 최신 핸드폰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없어서 그런건 아냐!

    마음 자세가 문제이지.

    남한테 받기만 좋아하는 것, 이것도 습관이 돼. 영혼을 병들게 한다고!

    난, 한번도 사례비를 받은 적이 없어. 목사님은 어련히 알아서 살겠지 하는 것 같아.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두셨다면서 5년 동안을 그렇게 짝사랑만 하고 있는데...

    이젠 나도 지쳐가..."

 

잠자코 듣는데, 문득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어서 고개를 드니

P목사님의 허옇게 서리가 내린 귀밑거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P목사님은 누구보다도 교인들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젊어서 이런저런 세월들을 보내며 인생의 연단과정을 많이 겪으셨기에 어지간한 어려움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입니다.

 

저는 그 분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오면서, 교인들을 잘 만나는 것도 목사의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지역은 시화공단의 공장 배후지역으로

지역적으로 그곳보다 훨씬 서민이 많은 동네입니다.

그래서 봄, 가을 이사철이면 교인의 이동이 잦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목사의 사례비 뿐만 아니라, 선교비도 더 많이 보내지 못해서 안타까워 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의 소식에는 교통비를 아껴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필요를 마다해가면서

큰 헌금을 보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식구에게 복을 주시리라는 생각입니다.

아니게 아니라 금년에 여기저기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잘됐다는 식입니다.

정말 '가난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저희 교회 식구들이 받는 일만을 즐기며 인색하기보다는 즐거이 감사하고,

나눔과 섬김이 일상이 되어 모두를 축복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큰숲 맑은샘 2008년 6월호 'About cell'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