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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에 대한 바른 지식을 통해 성도의 삶을 바로잡는 데살로니가후서

안산차도리 2009. 7. 20. 18:38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른 지식을 통해 성도의 삶을 바로잡는
데살로니가후서

 

바울과 데살로니가
그리스 북부의 요충지였던 데살로니가를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시에 방문했다. (행17:1-
9).
약 3주간 지내며 복음을 전하다가 폭동이 일어나 급히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은 이를 두고 바울이 일시적으로 바람만 일으켰다며 공격했던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바울은

그때의 방문이 짧았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데살로니가전서 2:1-3 에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새신자들을 위해 디모데를 파견했다. 그곳에서의 사역을 마친 디모데가 고린도에

머물던 바울에게 돌아왔을 때 데살로니가 전, 후서가 기록되었다.

 

데살로니가의 문제
외부의 핍박, 그리고 바울과의 짧았던 만남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을 잘 지
켰다.

하지만 복음이 가르치는 윤리적 거룩함을 이해하지 못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도덕적(성적)인 문란함

과 비정상적인 게으름에 빠져 있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어도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일부 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잘못 이해하게 된 배경에는

데살로니가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던 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 영웅이 나타나 데살로니가의 불쌍한 자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신화가 있었는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이 신화를 접촉점 삼아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복음을 제시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선교대상 지역의 종교와 문화에서 접촉점을 찾아 복음을 제시하는 사도

바울의 방식은 사도행전 17장의 아덴 선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후서에는 다른 성경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언급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또 데살로니가 지역에 재림주가 나타났다는 헛소문이 더 많이 들렸던 것으로 보인다(살후2:1-4).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복음을 믿었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을 과거 그들이 알던 신화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재림이 올 때까지 거룩하고 부지런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가르치는 복음보다는 종말이 다가왔으니

마지막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는 이교도적 가르침에 더 익숙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서를 통해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정확히 가르쳤다.

특히 데살로니가후서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여타 이교도적 신화를 혼동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보다 정확한 가르침을 주며 그에 따라 성도가 어떻게 부지런히 맡은 일을 감당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알려주고 있다.

 

21세기의 데살로니가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는 삶은 새 피조물이 되는 삶이다(고후5:17). 예수께서는 새 포도주
를 받기위해

새 가죽부대가 필요하다고 하셨다(눅5:37).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영적 사상

이나 철학, 학문, 문화에 비추어 복음을 이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복음의 핵심은 믿고 있으나 삶으로 실천되는 영역에서는 이교도적인 행태가 드러

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랬듯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또는 복음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적용할 때, 세상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접촉접으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접촉점으로 사용한 세상 사상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복음이 그 안에 함몰이 되어,

막상 그리스도인의 삶에 복음은 없고 세속적 풍조만 드러내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과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오해한 만큼이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당장 오실거라는 생각에만 집착해 문란하고 게으르게 살던 것과 다르게

오늘날은 당장 오실리 없다고 확신하며 문란하고 게으르게 이 땅에서의 성공과 축복만을 탐닉한다는 것

이다.

예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늘도 함께 하시는 주님(Lord, Master), 그리고 왕중 왕으로 다시 오실 재림주로 믿는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데살로니가

후서를 오늘날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숲 맑은 샘 2008년 10월호 '성경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