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숲 맑은 샘/큰숲 구약성경개관

아모스를 통해 본 이스라엘 사회

안산차도리 2009. 7. 3. 12:13

아모스를 통해 본 이스라엘 사회

 

뽕나무를 재배해야 했던 목자
아모스는 목자인 동시에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였다.

이 사실만으로도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개역성경의 '뽕나무'(7:14)는 돌무화과나무이다.

그리고 뽕나무를 재배한다는 것은 돌 무화과나무 열매에 일일이 바늘로 찔러 구멍을 내고 올리브 기름을

바르는 과정을 거쳐 원래는 떫은 돌무화과 열매를 무화과 열매처럼 달게 만드는 일이다.
농경지와 멀리 떨어진 광야에서 목축업을 하던 목자들이 평야 밀밭지대 사이에서 주로 자라나는

무화과나무 열매를 재배하게 된 배경은 바로 이스라엘 사회의 불의와 불평등에 있다.
이스라엘 땅에는 유월절이 있는 4월 이후 건기가 시작된다.

광야에 풀이 다 없어지는 시기이므로 목자들은 양떼와 함께 요단평야로 내려와 밀 추수가 끝나고

밀 밑동만 남겨둔 농장 주인과 협상을 했다.

양들이 밀 밑동을 먹는 대가로 목자는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해야 했다.

어차피 버려질 밀 밑동을 양들이 먹는 대가로 밀밭을 밟으며 양의 배설물로 땅을 비옥하게 해주면서도,

목자들이 돌무화과나무까지 재배해야 하는 상황을 보면, 농장주들과 목자들의 거래는 사실상 노예 계약

이나 마찬가지였다. 농장주들이 목자의 노동력을 착취한 셈이다.

남유다 광야와 인접한 드고아 출신 목자(1:1)가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 부자들이 대부분 소유했던 요단

평야의 밀밭사이에 난 뽕나무인 돌무화과나무를 재배했다는 사실은 빈부의 격차와 경제 정의의 실종

이라는 이스라엘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이다.

 

아모스가 고발하는 이스라엘
아모스의 직업과 사회적 위치만큼이나 아모스의 내용 역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패상을 잘 보여준다.

노예매매(2:6), 성문란(2:7), 악덕사채(2:8), 권력층의 착취와 포악함(3:9~10), 사치(3:15), 탐욕과 소비

중심적 생활(4:1), 허례허식의 종교(4:4~5), 불의(5:7), 거짓(5:10), 뇌물(5:12) 등 다양한 사회적 죄악이

고발되고 있다.

이 많은 부패상을 대략 두가지로 정리해보면 위선적인 종교, 그리고 그와 맞물린 부도덕성이라 하겠다.
북이스라엘은 백성이 남유다 예루살렘에 예배 드리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벧엘에 제단을 쌓고

송아지를 만든 후 '여호와'라고 부르며 종교생활을 했다.(왕상 12:25 이하).
이스라엘은 그 제단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는 모든 제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4:4 이하

고). 그러나 만들어낸 하나님을 경배한 이스라엘은 아무리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해도 결국

상숭배를 저지른 것이다.

그들의 종교는 자신들이 좋은대로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종교일뿐이었다.(4:5)

화려했지만 중심이 빗나간 종교였기에 삶의 현장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고, 북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부패와 불의로 가득했다. '종교성'이 '도덕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사가 아닌 순종이라는 사실(삼상15:22)을 잊은 백성은 얼마든지 종교적

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종교의 특징 또 하나는 종교와 정치의 유착관계이다.

북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이스라엘 왕의 정당성을 보호하는 방패역할을 했다(7:10~13).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 내에 왕정제도를 허락하신 것은 맞지만 그 어떤 왕도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을 직접 왕으로 경배하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마땅히 불완전한 이스라엘왕들을 위해

기도하며 왕들에게 하나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건강한 언론의 역할을 해야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종교는 정권에 의지하고 왕을 섬기는 종교였기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수 없었을뿐만 아니라, 여호수아 시절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던 가나안 종교(인간왕의 통치 제도

를 맹목적으로 보호해주며 탐욕적인 기복신앙만 부채질했던 종교)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큰숲 맑은샘 2009년 7월호 성경개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