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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완성을 준비하는 회복의 공동체를 향한 메세지, 에스라서

안산차도리 2009. 7. 13. 12:33

구원의 완성을 준비하는 회복의 공동체를 향한 메세지
에스라서

 

원래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한 권?
적어도 15세기가지 모든 히브리 사본에서 에스라-느헤미야서는 한 권이었다.
그런데 중세에 제롬(Jerome)이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구분하기

시작하더니, 그와 같은 구분이 히브리 사본에 영향을 끼쳐 훗날 두 권으로 분리되어 읽혀진 것이다.

 

에스라가 활동하던 때는...
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은 메대-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주전 539년에 멸망당했다.
다음해인 주전 538년 고레스 왕은 바벨론에 강제 이주된 유다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 성전을 재건

해도 좋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것이 에스라 1장의 사건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고레스는 유다와 더불어 다른 피 정복민들도 자치구처럼 살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그것이 제국 번영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는 예루살렘을 활성화하여 이집트(애굽)와

그리스 등 서쪽으로 제국을 확장하는데 유용한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역사의 흐름을 이용하셨다.

예루살렘의 활성화는 바사 제국을 부흥시키지는 못했지만(바사는 결국 멸망했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부활하여 끝까지 살아 남았다.

한편 당시 팔레스타인은 바벨론 시절 민족 이주 혼합 정책의 결과로 등장한 사마리아인(현지인과 이주민

이 통혼한 결과 생긴 혼혈족)이 점거하고 있었다.

 

소망과 낙심의 주기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잃어버렸던 유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소망을 동반했
다.

큰 소망으로 시작한 성전 건축은 지대만 간신히 만든 후 방해세력 때문에 공사가 15년간 중단되어 좌절을

맛보았다.

이후 성전을 완공하여 이스라엘의 부활이 조금 더 구체화 되었으나 향후 60년간 침체기를 맞는다.

성전이 완성되었으나 옛 이스라엘의 회복과 같은 새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유다백성의 영적 상태는 썩 건강하지 못했다. 물론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에 여러 개혁이 있었으나

그 결말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로 후기 공동체의 초라하고 안쓰러운 모습을 통해 에스라가 전달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에스라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 공동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진행되어가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기대만큼의 완벽한 회복은 아니었다.

애당초 하나님이 뜻하신 예루살렘 공동체의 회복이 과거 이스라엘의 영광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포로 후기 공동체는 회복의 영에 의해 포로된 것과 버림받음의 고통을 치유 받은 회복된 공동체였다.

왕권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제사와 희생과 성전예배와 제사장 직분이 회복되었다.

그런 예배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리고 성령의 임재를 몸으로 느낀 성령

공동체이기도 했다.

이 회복과 개혁은 향후 400년의 침묵기간을 버틴 마지막 부흥 운동이었으며 그때 이루어진 성전과 예배

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때'를 가리킨 역사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1, 23)'

 

* 이 단락은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김지찬 저)의 538페이지를 인용, 편집하였습니다.

           

                                                                   큰숲 맑은샘 2008년 6월호 '성경개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