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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아가렴~

안산차도리 2009. 5. 12. 21:53

                                      그렇게 살아가렴

 

                                                                                                                                   제정미

 

밤11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한 올해 고등학교 1학년 큰아이,

돌아오자마자 어김없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 엄마에게 이야기한다.

오늘의 주제는 ‘공책 빌려가는 얄미운(?)아이들’ 이야기다.

큰 아이 왈, 시골 살다가 부산에 오니, 아이들이 너무 공부를 많이 해서 삭막하고, 마음 맞는 친구 찾기

힘들단다.

그래도 단짝 친구가 생겼고, 제법 친한 친구도 많이 생겼는데,

그 비결이, 자기는 친구들이 공책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냥 다 빌려준단다.

무슨 이야긴고 하니,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평소 공부시간에 엎드려서 자는 아이들이 많은데,

다들 전날 학원 가고, 과외하고, 너무 공부를 많이 해서 학교에서는 졸기일쑤란다.

그러다가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너도 나도 수업시간에 졸지 않는 딸에게 필기노트 좀 빌려달라고

야단이란다.

“하진아, 공책 좀 빌려줘! 넌 정말 글씨가 예쁘잖아? 그리고 필기도 제일 잘하고…”

이렇게 칭찬하는 말까지 하니 안 빌려 주기도 그렇고,

너도 나도 가져가선 거의 매일 고스란히 베끼곤 하는 모습이 얄밉기는 하지만,

언젠가 읽었던 「다니엘 학습법」에서 김동환 목사님께서 학교 친구들에게 공책은 잘 빌려주라고 했기에

자기는 오늘도 그냥 달라는 대로 다 빌려줬단다.

그러면서 “엄마, 예수님의 향기를 날리기 위해서 그랬어! 그리고 솔직히 친구들도 많이 사귀어야지.

고3인 언니들은 친한 친구끼리도 공책 안 빌려준대. 하지만 난 빌려줄 거야!”라고 했다.

평소 딸의 야무진 필기 습관을 아는지라 나도 조금 아까운(?)마음이 들면서,

그래도 딸이 욕심 많은 나보다 낫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의 일화다.

아이들이 평소 받고 싶어 하던 전설적인(?) 점수인 올백(all 100)을 맞은 일이 있다.

졸업을 앞두고 치른 마지막 총괄 평가시험이었는데, 딸아이는 전 과목 모두 100점이었고,

전교에서 올백은 딸아이 단 한명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도 우리 아이는 학원이라곤 전혀 안 다니고 스스로 공부한 딸이었기에 담임선생님은

어깨가 으쓱해져서 이 반 저 반 다니며 선생님들 사이에 자랑을 많이 하셨고,

당시 학교 특기적성교사로 출근하던 나에게도

“그래, 공부는 하진이처럼 저렇게 꾸준히 해야 하는 거야!”하시던

이웃 반 선생님들의 말씀이 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날,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채점된 시험지를 나누어주며 자기의 점수를 확인

하라고 하면서 발생했다.

혹시라도 자기 점수가 잘못 매겨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그 과정에서 간혹 선생님들의 실수나 잘못된

문제로 아이들의 점수가 만회되어 점수가 더 올라가곤 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잘못된 게 없다는데, 수학문제를 확인하던 큰 아이가 손을 번쩍 들어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선생님이 맞다고 한 자기의 수학문제의 풀이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니 틀린 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 문제는 주관식으로 5점짜리 문제인가 했는데, 딸이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

놀란 쪽은 오히려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선생님도 가만히 살펴보니 풀이과정에 숫자가 잘못 기록되었고,

만약 그 점수가 깎인다면 아이는 올백이 아니라 평균이 99.8점 정도가 될 판이었다.

그런데도 얼른 점수 교정을 해주지 않고 조금 실망해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딸은 의아했고,

어쩌면 그 때 선생님이 기억하는 우리 딸도 참 특이한 아이였을 것 같다.

기를 쓰고 자기 성적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니 말이다.

결국 진실의 승리로 딸은 전체 평균 99.8점이 되었고,

그 시험에서 전교생 가운데 단 한 명이었던 전설적인 올백의 점수는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사실 대학시절 같은 방을 쓰던 기숙사 친구가 내 리포트를 표절한 사실에

두고두고 남모르게 이를 갈았으며, 시험 칠 때는 단 한 번도 친구들에게 내 노트를 보여준 적이 없는,

참으로 속 좁고 치사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엄마에게서 저런 딸이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주님의 은혜가 놀랍기만 하다.

 

초등학교 때 올백을 99.8점으로 고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나 잘했지, 엄마!”하던 딸,

오늘은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고 싶다는 딸의 모습 앞에 이 엄마는 괜히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늦게 귀가하여 내가 차려준 간식을 먹고 딸은 숙제를 하는지, 공부를 하는지, 아직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얼 쓰고 있다. 매사에 성실하고 정직한 딸이 참으로 대견하다.

 

“딸아, 비록 세상이 너를 속일지라도 그렇게 정직하고 투명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렴,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며 그렇게…”♣

 

교역자 부인.

부산 인터넷 갈릴리마을 가족

필명: 동화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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