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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 이야기> “잘했다, 잘했어!”

안산차도리 2008. 12. 16. 15:32

<개척교회 이야기>    “잘했다, 잘했어!”      ■  황대연  ■

 

지금은 많이 분주해져서 예전만 못합니다만, 교회 개척 초기에는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아파트 전도를 다니다 보면, 일반 성인들은 비디오인터폰으로, 또는 현관문의 물고기 눈같이 생긴 구멍으로

내다보고는 문을 열어주기는커녕 쌀쌀맞은 거절을 하기 일쑤여서 어린 영혼이라도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놀이터를 찾았었지요.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어린이들은 얼마나 귀한지!!

몇 번 뺑뺑이도 돌려주고 그네도 밀어주면 금방 친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개척교회 목회자의 주머니 사정이라야 워낙 뻔한 터라 어느 날 대형 할인

마트에 가서 큰 봉지에 들어 있는 사탕을 샀습니다(이것은 흔히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입가심용 캔디입니다).

정말 별 것 아니지만, 사탕 한 알을 까서 아이들 입에 넣어주면 무척 잘 따랐고, 황금색, 흰색, 빨간색, 검정색,

초록색 등 색깔로 복음을 설명하도록 되어 있는 <글 없는 책>을 펴들고 설명하는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전도 된 아이들로 저희 주일학교가 시작이 되었지요.

그 날도 어린이 전도를 위해 동네 놀이터를 걷던 어느 초저녁, 미끄럼틀에서 놀던 두세 명의 여자 어린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왠지 마음에 끌려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낯선 아저씨가 부르니 경계심을 느끼면서도 아이들은 다가 왔습니다.

“너희들 참 예쁘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좋겠다. 난, 요 앞에 있는 한가족교회 목사님이란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모두 맞벌이로 일을 다니시거나,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지 못해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도 못하고, 놀이터에 나와서 놀기에는 커버린 아이들이지만 어디 특별히 놀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 그저 이렇게 놀이터에 나와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중 한 아이, L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늘 초등학교 1, 2학년 조무래기(?)들만 있던 교회에 6학년 짜리 큰 아이가 생긴 겁니다.

자식 많은 집의 큰딸이 동생들 돌보듯이 L은, 착하게도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아 주기도 하고, 선생님도

잘 도와주면서 이듬해엔 중학생이 되고, 그렇게 커갔습니다.

3년 후 고등학교 진학 때는 가정형편도 여의치 못하고, 또 본인도 공부는 그리 썩 취미가 없었던지 실업계를

진학을 했습니다. 공부 쪽보다는 좋아하는 연극반에 들어가 활동도 하고 그러다가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할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년 들어 학생회를 담임한 K선생님의 열정과 도전으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네 가진 달란트(재능)를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라!!”

 

아이들은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고, 학교 공부뿐 아니라 저마다 드럼도 배우고, 전자기타를 치기도 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L역시 좋아하는 연극, 그리고 소질도 있는 연극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진학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는 고3, 그것도 실업계 고등학생인데….

저희 부부는 내심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끌어가시는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L은 정말 열심히 학교의 연극반에 몰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교회에도 수요저녁예배, 금요

심야기도까지 출석을 하며 기도하더니 얼마 안 되는 용돈에서 몇 천 원씩 십일조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L은 무료 연극 관람 티켓을 쑥스럽게 내놓으면서

“목사님, 저희 학교, 이번에 전국청소년연극제에 나가요. 오셔서 응원해 주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L은 바로 그 날, 그러니까 지난 11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됩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아내는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보… 걔, 너무 잘해요. 잘해!”

 

L은 이번에 S예술대학에 수시 원서를 접수하였습니다. 실기 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 저는 평소 잘 하지 않는

안수기도를 해주며 마음속 깊이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성탄절 교사 강습회가 있었고 L역시 새해부턴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기로 순종하고 강습회를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달려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합격했어요!”

“엉? 어이구 잘했다, 잘했어!!”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고, 주변 사람이 뭔가 싶어서 돌아봅니다.

아이는 10명을 뽑는 수시 모집에 350명이 온, 자그마치 35대 1의 경쟁을 당당히 뚫고 합격을 한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고맙고 기뻤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학생들이 합격하고 낙방하는 일상 속에서 대학을 붙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가족교회에서

주일학교와 학생회를 거쳐 나온 첫 졸업생이 쉽지 않은 환경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뭔가 해 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로서 마음 뿌듯함을 느끼게 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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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어느 날, 새벽기도를 끝나고 나서 아내가 불쑥 봉투 하나를 내밉니다.

“응…?”

“이거… 당신 기도할 때 권사님이 놓고 가셨어요. 자꾸 L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시면서요.”

“노인 분이 무슨 돈이 있으시다고….”

권사님은 경제력이 없으십니다. 그저 자녀들이 조금씩 용돈을 드리면, 그것을 가지고 당신 쓰시고,

또 형편껏 헌금도 하시고 그러시는 어른입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십만 원 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수표 발행 날짜는 벌써 몇 달 전인데 아마 수표를 바꾸어 쓰는 것에 익숙지 않으신 권사님은

그 동안 이것을 간직해오신 듯 합니다.

 

낮에 권사님을 뵌 길에 인사로 말씀을 드립니다. “권사님, 웬 돈을 그렇게 주셨데요?”

“목사님, 돈도 없는 것이 대학 붙었다고 저러고 다니는 것을 보니 나가 참말로 마음이 짠해부요.” 

 

며칠 전에는 생면부지의 어느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더랬습니다.

“황 목사님이십니까? 목사님, 구좌 번호를 좀 알려 주세요.”

“예? 무슨 일로 그러시는 데요?”

“예, 그 L학생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을 좀 보내려구요.”

그 날 저는 삼십만원이 입금된 통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남서울 산본교회의 부목사로 섬기고 계시는 K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장학부에서 남은 예산이 좀 있는 것 같은데, 그 L학생을 좀 후원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K목사님은 제겐 신대원 후배이긴 하나 나이로 치면 저보다 훨씬 연배이십니다.

오늘 저는 통장에 백 오십 만원이 입금된 것을 보았습니다.

 

학생회를 지도하는 J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런 소식을 전했더니

갑자기 소리를 내어 엉엉 울기 시작합니다.

지난 여름, 아이가 진학의 꿈을 갖도록 비전을 줄 때, 대학에 합격이 된다고 해도 어려운 경제적인 처지에

그저 취직이나 하겠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반드시 학비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우며, 힘을 내라고 기도해 주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채워주셨다고 다 큰 어른이 엉엉 우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는 또 눈물이 납니다.

“어어… 나, 눈물나게 이러지 마세요! 나 조금 있다가 누구 만나야 하는데….”

 

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는 불경기에 모두들 힘겨움을 느끼는 계절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며, 마음에 부담을 느끼고, 기도하게 되고,

이리저리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마음이 짠해서, 마음이 걸려서, 또는 마음이 안타까워서

무언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사람들.

이미 우리는 돈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나저나 L아!

네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사람들을 움직여 가시는 것을 보니…. ♣  

 

                    <목사. 인터넷 갈릴리마을 글방가족, 시흥 한가족교회 담임교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