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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자랑스런 한 달란트 받은 자 ^^

안산차도리 2009. 1. 30. 14:42

나는야, 자랑스런 한 달란트 받은 자

                                                                                                                                                                         정금

 

저는 정말 잘하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다고 하는데, 암만 머릴 쥐어짜 봐도

저에게 주신 은사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무얼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있어야 그걸 통해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고

이웃에도 유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딱 하나를 도저히 찾지 못하겠습니다.

노래를 잘했으면 찬양사역을, 공부를 잘했으면 의사나 간호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손재주가 있었으면 미술이나

꾸미기로 교회에도 도움을 주었을 테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었으면 교사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을

텐데… 하며, 제 손에 없는 것들을 부러워하며 아쉬운 입맛만 다시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눈에 띄게 활약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나 부럽던지… ‘왜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나’하고

자존감이 형편없이 구겨졌습니다.  

 

바로 대학 때까지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무얼 해도 성에 차지 않았더랬습니다.

교회 봉사를 어쩔 수 없이 맡으면 ‘무얼 해도 난 제대로 못해’ 하는 생각 때문에 으레 소홀히 했었습니다.

난 가르치는 은사도 없는데 자꾸만 교사를 시키고, 리더십도 없는데 자꾸만 임원을 시키고, 성가대는 머리수

채우느라 할 수 없이 앉아 있어야 되고…. 힘에 겹고 기쁨 없는 봉사가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주일날도 성가대 연습시간이 되어, 성가대 알토파트에 앉아있었습니다.

알토는 노래를 좀 못해도 별 부담 없이 성가대 구색만 맞춰주면(?) 되므로, 그나마 싫은 내색하지 않고 했지만,

노래를 워낙 못한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나 때문에 혹시 삑사리가 날까봐 항상 립싱크로 입만 벙긋대고 있던 터

였습니다. 기쁨이 있을 리가 없지요.

한편, 소프라노 파트에는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노래를 잘 하는 한 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언니는 정말 조수미처럼 천상(天上)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언니가 찬양할 때마다 저는 넋이 빠지게 들으며 엄청나게 부러워했었지요.

그러다 그 언니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언니는 노래를 잘해서 참 좋겠다. 나도 노래를 잘하면 언니처럼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할 수 있을 텐데,

난 왜 이렇게 잘 하는 게 없는지 모르겠어.”

내가 하소연하자, 언니는 차분한 음성으로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래, 노래를 잘한다는 건 참 귀한 은사이지. 그런데, 언니는 그게 참 힘들어.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셨으니, 나도 그만큼 많이 남겨야 하거든.

열 달란트 받은 자는 많이 받아 기쁘지만, 그만큼을 또 남겨야 충성된 자가 될 수 있잖니?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한 달란트만 남기면 되는 거야.

네가 적은 은사를 받았으면, 그만큼 안에서 너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다른 사람처럼 못한다고 해서 전혀 기죽을 필요 없어.”

 

순간 어떤 깨달음이 머리를 울렸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 그나마도 불평하며 그 한 달란트를 땅속에 묻었던 자,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며

내침을 받았던 자,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 때처럼 성경의 비유말씀이 나에게 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깨달은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 주신 귀한 깨달음을 붙잡고 하나하나 변화를 시도해보았습니다.

우선 성가대에서 립싱크만 하던 것을 그치고, 연습시간에 열심히 연습을 하여 보았습니다.

내가 소프라노처럼 그렇게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음감(音感)이 떨어져서, 노래를 하다보면 자꾸만 소프라노의 음을 따라갔었는데

그걸 고치려고 아예 집에까지 악보를 가져가서 일주일 내내 그 곡을 연습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헷갈리지 않고 내 음(音)을 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또 성량이 풍부하지 못하여 목소리도 작고 높은 음도 안 올라가는데,

지레 포기하지 않고 배에 힘을 주며 연습을 거듭해 보았더니, 점차로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옆에 앉은 사람에게 칭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햐! 너 알토 정말 잘 한다.”

하, 그 기쁨이란! 비록 남들처럼 아름답게 찬양하진 못하지만,

내가 가진 목소리로 최선을 다한 모습이라 생각하니, 기쁨이 마구 밀려왔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변화는 일어났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을 지도할 때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성경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저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좀 어리고 순하게 생겨서(?) 아이들이 만만히 보고 말을 도통 듣지 않거든요.

그래서 주일학교는 저에게 스트레스거리요, 시간 때우기로 어찌어찌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능력도 없는 게 노력도 안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노력이라도 해봐야지 하는 맘이 들었습니다.

주중 내내 주일 공과 준비하며 끙끙대며 고민도 하고, 아이들에게 무차별로 전화심방도 하고,

못난 나 같은 교사를 담임으로 둔 아이들이 불쌍하여

하나님께 그 영혼들을 위한 기도를 저절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걸 느끼면서

‘참으로 주일학교 사역은 가르치는 은사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구나,

한 영혼을 품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겠구나’라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청년회 임원을 맡았을 때도, 난 선천적으로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고 조용한 사람인데,

앞에 나서서 이끌어야 하니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나의 한 달란트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앞에 나서서 유연하게 이끌지는 못해도,

청년 회원들의 대소사를 챙겨주며, 날마다 전화심방도 하고, 맛난 것도 사주고, 관심 있게 지켜봐 주었습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도, 나중에 임기가 끝났을 때,

많은 이들이 참 열심히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불평을 들으시고 갑자기 멋진 은사를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저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마음가짐 하나 고쳐먹은 거 그걸로 인해서 얼마든지 귀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열 달란트 부어주신 이들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지만,

한 달란트 받은 저 같은 이에게도 동일한 칭찬과 은혜를 내려주시니,

어찌 하나님이 공평치 않다고 불평할 수가 있으며 어찌 은혜의 주님이라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눈을 돌려보니, 나에게도 주님이 주신 은사라는 것을 애써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글을 조금 쓸 수 있다는 거

- 그것으로 다른 이들에게 소망을 쪼끔이라도 줄 수 있다면. 얼굴이 조금 선하게 생겼다는 거-

그래서 전도하러 갈 때 인상으로 일단 먹고 들어간다는 거.

음… 남의 말 잘 들어주는 거- 위로의 말은 적절히 못해줘도 같이 아파해줄 수는 있는 법. 궂은 일 잘하는 거-

그러고 보니, 하하, 난 푸세식 화장실도 겁나게 잘 청소할 수 있는 담대함을 지녔다.

잠 잘 자고 밥 잘 먹는 거- 어디서든 훌륭히 적응할 수 있다.

어느 오지든 오케이다. 우와! 나도 잘하는 거 많네.

이런 것도 은사(恩賜) 맞남유?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분이시죠.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열심히 남기렵니다.

주님께서 주신 귀한 한 달란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