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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차도리 2012. 7. 9. 12:41

 

 

<사진캘리그라피 출처는 임정수디자인>

 

믿음은 가장 큰 격려다.


전 경북대학교 총장 박찬석님 일화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명중 68등. 꼴찌를 했다.
...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베”
“명순이(아버지)는 자식하나는 잘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하고 불렀지만 다음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살이 되던 어느날,

부모님 앞에 33년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저 중학교 1학년때 1등은요...”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민우(손자)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수가 없다.
.
.
미편(未便)하신 가슴속 가지가지 사연들을 지워버리시고 노심초사(勞心焦思) 하시

면서 숨겨 주십니다.
그것이 어버이 마음입니다

자식은 편협(偏狹)해서 자식낳고 철이 들때까지 부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부모님은 그렇칠 않습니다
그리고 잘되라,건강하라 오매불망 늘 기원해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관대하신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내 논 물꼬에 시원하게 물 들어 가고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걸 바라보시며
가장 행복해 하시는 분들이 바로 우리네 어버이들입니다

서울교대 교육대학원 계숙희 교수 페이스북 강의

'페친님들과 공개강의에서'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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