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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현상, 그 너머에 있는

안산차도리 2009. 12. 11. 10:26

눈에 보이는 현상, 그 너머에 있는

 

윤문현

 

제가 여기(미국)에 온 지 얼마 후에 교회 수요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아직 말도 안 들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제 중심을 보시고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참여했었습니다.

교회가 작아서인지 기도회는 기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작했습니다.

어느 분께서 기도제목을 내 놓으시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바람에

저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함께

“하나님은 저분의 마음을 아시지요?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 주시고, 마음을 위로해 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영어를 알아듣는 아내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까 그 우시던 분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기도 요청 내용이 뭐였어?”

 

놀랍게도 아내의 대답은 제 예상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으응! 그 분은 혼자 사시는 분인데 지난번에 강아지 아프다고 하시더니 이번에 죽었나봐.

  땅에 묻어주고 왔대!”

 

집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강아지를 자식 취급하는 사람들을

평소에도 못마땅하게 여겼던 터라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겨우 강아지 죽은 걸로 하나님께 기도한 거야?”

“우리 생각하고는 좀 안 맞지?”

“강아지 죽었다고 우시는 분도 그렇고, 그 기도제목 듣는 분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던데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제가 너무 못마땅해 하는 것이 눈에 보였던가 봅니다.

차근히 설명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제 마음이 좀 민망해졌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 생각과 많이 달라. 단지 강아지가 죽었다고 같이 울어주었겠어?

 그것만이 아니고, 그 분이 혼자 사시니까 강아지가 얼마나 식구 같았겠어!

 그러니 그 강아지를 잃은 마음이 아프지, 안 아파?

 다른 분들도 그 아파하는 마음이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야!

 우리한테도 낯선 땅에서 사느라고 얼마나 힘드냐고 눈물짓는 분들인데…”

 

마음을 보자, 인격을 존중하자,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라고 늘 되뇌지만,

또 금방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이 상해 있는 형제자매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순전하고 착한 마음을

읽지 못하고,

제 마음의 기준으로 마음대로 판단하고 못마땅해 하는 제 모습이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었습니다.

이 분들이 얼마나 순수한지는 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아내가 쇼핑센터에서 딸 예샘이를 잃을 뻔한 일이 있었는데,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던 것이 교인들의 합심기로 이어지고,

아무 탈 없이 예샘이를 되찾았고,

그 주에 교회에 갔을 때 다들 얼마나 놀랬느냐고 아내를 안아주시면서 눈물 지으셨다라는 걸

전화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처럼,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현상 그 너머에 있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양선, 온유와 진실함…

그 선한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으로 충만했으면 좋겠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


회계사. 서울.

월간 해와 달 2009년 12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