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누기/좋은 글

눈물의 주전자

안산차도리 2008. 11. 4. 15:37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 갈릴리마을에 문의하여 은혜와 감동을 주는 글을 발췌하여

앞으로 저희 카페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락 받았습니다.

 

월간 쪽지 해와 달 2008년 8월호의 발행인 최용덕 간사님의 글입니다.

최용덕 간사님은 『 낮의 해처럼 밤엔 달처럼,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우리 이 땅에 』와

같은 주옥같은 찬양을 쓰신 귀한 분입니다.

 

 

아래 내용은 지난 6월 11일 뇌종양으로 꽃다운 16살 딸 로아를

먼저 떠나보내고 쓴 글 『 눈물의 주전자~ 』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간사님이 대학생때 지은 찬양이 『 우리 이 땅에 』입니다.

찬양은 은혜의 CCM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어린 딸 로아를 먼저 보낸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우리 이 땅에

우리 이 땅에 몸으로 태어나
무슨 일 하다가 무엇을 남기랴
우리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나
너와 내가 남남으로 주 앞에 설 때에
우리 무엇으로 주님께 드리랴

혹은 긴 인생 어떤 인 짧은 인생
그러나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네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 것
너와 내가 영혼으로 만날 수 없다면
우리 이별을 어떻게 견디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 얻어
언젠가 또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우리 헤어져도 슬프지 않을 수 있어
너와 내가 영혼으로 또 다시 만나자
주님 우리 위해 함께 계시리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눈물의 주전자

 

딸아이 로아가 우리 곁을 훌쩍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이의 영혼이 지금은 주님 나라에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거기서 얼마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도 잘 알고,

또 훗날 우리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지만,

문득 문득, 아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울컥 눈물이 솟구쳐 흐릅니다.

때로는 그것이 흐느낌이 되고,

아주 가끔은 통제하기 힘들 정도의 울음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린 아들과 함께 산지기집 텃밭에서 감자를 캤는데,

그날은 감자를 캐던 중에도 잠깐 눈물이 솟구쳤지만,

감자를 다 캔 다음에는 어찌나 눈물이 자꾸 흘러나오는지,

딸아이 사진을 보며 한참을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감자들은 바로 석 달 전에 딸아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씨감자를 만들고

또 밭에다 같이 심었던 것이었습니다.

감자를 캐노라니 함께 그 씨감자를 만들고 또 발 고랑을 파서 같이 심었던

딸아이의 모습과 음성이 어찌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지

갑자기 너무도 딸아이가 그리워졌습니다.

“사랑하는 딸 로아야, 네가 보고싶구나!”하며 울었습니다.

제가 딸아이를 그리워하며 울었다는 말을 듣고 어느 분이 정색을 하며

“지난 번 장례식날에는 천국으로의 환송식 어쩌고 하며,

슬피 우는 아이 친구들에게 울지 말고 웃으며 보내자며

마치 성자(?)처럼 초연하여서 내심 놀라웠는데,

이제는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혼돈스럽다.

남들 앞에서는 대단한 신앙의 위인처럼 보였지만

결국 뒤의 모습이 당신의 진짜 모습 아니냐?

당신은 이중인격자이고 위선적이다”며 분에 찬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그런가 하면“딸이 천국 갔는데 왜 우느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위선적이고 이중적이라는 말씀에는 아무런 변호를 할 마음이 없지만,

뒤늦게 딸아이로 인해 제가 때때로 흘리는 눈물은,

딸이 천국에 갔느냐 못 갔느냐에 대한 「믿음」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딸아이 장례식 날, 제가 딸아이의 육신을 웃으면서 보낸 것은,

그 자체가 딸아이가 아니라

그것은 딸아이가 이 땅에서 16년 간 입었던 옷이요 집이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장례식에서 구슬피 울며 통곡하지 않은 것은,

딸아이와의 이별은 장례식 그날이 아니라 이미 사흘 전에 병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웃으며 딸아이를 천국으로 환송한 것도 진심이고,

그 아이가 지금 천국에서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도 너무도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문득 문득 딸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울음이 나오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그 아이이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그 아이의 몸을 쓰다듬거나 안을 수도 없고,

내가 훗날 죽어서 그리로 가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데 대한

그리움과 사모함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지,

그 아이와는 이제 영원히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어서 우는 절망의 눈물은 결코 아닙니다.

그 아이의 죽음 자체가 원통하고 억울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장성하도록 잘 키워서 시집 장가를 보내는 날,

부모는 행복한 얼굴로 그 자녀들을 축복하며 떠나보내지만,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그 자녀가 그 동안 지냈던 방과 자녀의 물건들, 흔적들을 보노라면, 어찌 그리움의 눈물이 나지 않을 것입니까?

그 자녀가 꿈같은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어머니들은 아들을 군대에만 보내 놓아도 때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는 법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딸아이를 그리워하며 때때로 눈물 흘리는 일은

아마도 저희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7월 초 어느 날, 중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신

김화순 선교사님께서 문득 이러셨습니다.

“간사님, 혹시 지난주일,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님 설교 들으셨어요?”

“아뇨, 왜요?”하고 묻자

“마침 그 주일 예배 때 「죽음」에 대해 설교를 하셨는데,

마치 오정현 목사님께서 로아

이야기를 들으신 것처럼, 사랑하는 어린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을

위로하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 설교를 들으면서 꼭 로아와 간사님 가족을 위해 하시는 말씀 같았어요.”

그래서 서울 사랑의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지난 6월 29일 주일에 오정현 목사님께서 하신 설교말씀을 인터넷으로 들었습니다.

김화순 선교사님 말씀처럼, 마치 로아를 천국으로 떠나보낸 저희 가정을 두고서

목사님께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 같아서, 참으로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오 목사님 설교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설교 내용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이스라엘의 국립박물관에 가면

아벨 펜이라는 사람의 작품 「눈물의 주전자」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2차 세계대전 중에 홀로코스트(Holocaust)를 하면서

수많은 유태인들이 죽었습니다.

그 가운데, 엄마는 살아남고 사랑하는 딸이 먼저 죽은,

그런 애통하는 상황을 정리해서 그린 그림이 「눈물의 주전자」입니다.

그 그림과 함께 써 놓은 시가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엄마가 사랑하는 자식 딸을 먼저 세상에서 떠나보내니까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날마다 이 딸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잠을 자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잠든 엄마에게 환상이 보였는데,

사랑하는 딸이 천국에 홀로 서 있는 그런 환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천국에서 등에 커다란 주전자를 등에 지고 홀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엄마가 달려가서 딸을 껴안고 물었습니다.

“얘야, 왜 너는 혼자 있니? 왜 혼자서 있는 거야?”

딸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엄마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다른 아이들은 저기 황금 길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잖아요.

또 같이 놀자고 나를 부르잖아요.

그런데 저 아이들에게 가려고 하지만 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제 등에 무거운 주전자가 있기 때문이예요.”

엄마가 “이 주전자가 무엇인데?”하고 묻자 그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가 울면 엄마의 눈물이 이 주전자에 담겨진답니다.

엄마가 울면 제가 엄마의 눈물을 이 주전자에 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엄마가 울면 제가 저 아이들에게로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자 엄마가 그 환상 중에 딸에게 말했답니다.

“알았다, 아가! 이제 너는 어서 가거라. 내 사랑스런 아가야, 어서 가거라!

내가 더 이상 너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으마.

내 다시 너의 행복을 빼앗지 않겠다.”

그렇게 말했을 때, 마치 새가 올무에서 풀려나듯이,

사랑스런 딸아이가 주전자를 내려놓고

동무들에게로 달려갔다는… 그런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 어머니가 다시는 딸을 인하여 울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그 딸을 맡기고

이 땅에서 힘 있게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정현 목사님은 “여러분, 먼저 간 가족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것보다,

주님께 맡기고 이 땅에서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힘 있게 살아가도록 하십시다”하고 권면하셨습니다.

 

눈물의 주전자… 비록 환상 중에 본 광경이라고는 하지만

참으로 의미심장한 이야기여서, 오래 오래 가슴에 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로아네 집에서도 엄마 아빠가 문득 문득 흘리는 그리움과 애통함의 눈물이

행여나 천국에서 뛰노는 로아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는 올무가 되지는 않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로아 엄마와 아빠도 위 이야기 속의 그 엄마처럼

이렇게 로아에게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알았다, 아가!

이제 너는 어서 가거라.

내 사랑스런 아가야, 어서 가거라!

내가 더 이상 너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 않으마.

내 다시 너의 행복을

빼앗지 않겠다.”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아직 잘 안 됩니다.

자꾸만 아이가 보고 싶고, 자주 그립습니다.

곁에 있을 때 좀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주지 못했던 것,

부모의 그릇된 욕심과 이기심으로

때때로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들이 회한이 됩니다.

그럴 때마다 자꾸 주책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세월이 약이라고! 그래요, 그럴 것입니다.

세월이 좀 지나면 지금보다 훨씬 덜 울고,

이제는 마침내 딸아이의 어깨에서 눈물의 주전자를 벗겨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글 나누기 >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쉼이란?  (0) 2008.11.04
기도의 손  (0) 2008.11.04
비행기표  (0) 2008.11.04
착한 더벅머리 총각처럼  (0) 2008.11.04
한 사람의 박수소리  (0) 2008.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