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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력서

안산차도리 2009. 9. 8. 23:06

다시 쓰는 이력서

 

1831년 - 23세 사업에 실패

1832년 - 24세 주 의회 의원 낙선.

1833년 - 25세 사업실패 (큰 빚을 짐- 17년만에 갚음)

1838년 - 30세 의회 의장직 낙선.

1840년 - 32세 대통령 선거위원 낙선

1844년 - 36세 하원의원 공천 탈락

1855년 - 47세 상원의원 낙선

1856년 - 48세 부통령 낙선.

1858년 - 50세 상원의원 낙선.

.................................

1860년 - 52세 대통령당선.

 

우리가 잘 아는 미국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력서다.

우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만 안다. 그 이전에 이토록 많은 실패의 연속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인터넷의 위력으로 링컨의 뼈아픈 이력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뿐 아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에 시달렸으며, 커서도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미국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그런 사람이었다.

낙선에 낙선, 고통에 또 고통,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난이 다가왔을 때 그는 손을 들었다.

두 손을 다 들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신실하신 하나님, 도와주시는 하나님. 그분 앞에 그는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토록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존경받게 된 비결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링컨은 대답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저는 실패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제 안다. 그에게서 멋있는 향기가 솔솔 풍겨져 나온 이유를.

실패 후의 승리, 실패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깊고 진한, 그 진국의 맛을 그를 통해 본다.

 

나도 그랬다. 중학교 진학할 때 1차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2차로 진학했다.

그것도 2학년 올라갈 때 상, 하반으로 나뉘었는데 그때도 난 하반이었다.

상반은 세 반이었는데, 난 그 세 반에도 들지 못하고 하반이었다. 하반 행진은 3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학교를 하반으로 졸업한 나는 고등학교 역시 1차에서 떨어졌다.

2차로 겨우 진학하고 보니 거기에도 특별반이 있었다.

그중 나은 아이들만 모아놓은 특별반 즉 상반은 5반이었는데, 난 2반이었다.

중학 때부터 시작된 하반 행진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져갔다.

 

대학 진학도 마찬가지였다. 1차로 지망한 대학에서 보기 좋게 낙방을 했다.

이제 1차에서 떨어지는 것쯤은 만성이 됐다. 그래서 또 그러려니 했다. 대학도 2차에 간신히 붙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1학년 때 폐결핵에 걸렸다. 약을 먹으면서 공부를 했는데 2년 만에 치료가 됐다.

졸업한 해에는 심장수술을 받았다. 심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물혹이 있어서 제거하느라고 목숨 건 수술을 받았다.

 

몇 년 전에는 목 디스크가 터져서 응급으로 수술을 받았다. 6개월간 목에 기브스를 하고 생고생을 했었다.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체험이 있고, 죽음의 근처에까지 갔다 온 경험도 있다.

이렇듯 나의 이력서는 눈물 방울 없이는 읽을 수 없게 점철이 되어있다.

되돌아보면, 그 어느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특별하신 간섭이 없이는 회복될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이력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이력이요, 사랑의 이력이다.

 

이제까진 이력서라고 하면 성공한 부분만 쓰는 것이었다. 장점만 기록하고 단점은 생략하는 것이 이력서였다.

한마디로 내 잘난 점만 보여주는 것이 이력서였다.

하지만 이제 크리스천으로서 이력서를 다시 쓰는 법을 배운다.

약한 점을 기록하는, 약점, 단점을 애써 밝히는 이력서를 쓴다.

약한 점을 자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점은 자랑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특장점은 내입으로 말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오늘 고린도후서 11장 16-33절을 보며, 다시 쓰는 이력서를 묵상한다.

이제껏 내 장점만 자랑했던 이력서를 폐기하고, 이제 내 단점을, 약한 점만을 자랑하는 이력서를 다시 써본다.

예수의 사람,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내 능력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내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갈릴리 마을 해와 달 2009년 9월호에서 김양규 칼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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