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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기일기> 경고 / 구명(求名)

안산차도리 2009. 7. 20. 11:27

 

 

<산지기일기> 경고 / 구명(求名)

 

요즘 다니고 있는 이비인후과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본 경고(?)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에 <손대지 마세요> <기대면 추락 위험>라고 하는 문구인데,
누군가 그 앞에다 메직으로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 ^

 

 

 

남자에게 기대면 추락 위험?? ^ ^

 

 

 

<구명(求名)>

연꽃마을 데크에 난간을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정말 막바지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애초 설계엔 없던 것인데, 막상 산책길 데크를 해놓고 보니
어린아이들이 그 길을 마구 내달리는데 자칫하면
바로 옆으로 깊이 2미터 가까이 되는 도랑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추가로 공사를 요청하여 철제 난간을 세우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50센티 정도 높이로 하는 것이 모양새나 기능면에서 무난할 것 같다고 했고
이장님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선 1미터는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장님 안이 받아들여져서 철제 사각봉을 용접으로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한창 용접 일이 진행 중인 인부들에게 제가 갔습니다.
인부들은 평소에 냉커피나 컵라면 등으로 친밀해진 분들입니다.
제가 대표 되는 분에게 진지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 저희 일꾼 목숨 하나 건져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화들짝 놀라며 "예? 목숨을요? 아니 무슨 사고가 났나요?" 하고 소리칩니다.
"예, 일 잘하는 저희 일꾼 하나가 목숨이 간당간당합니다. 겨우 붙어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어떻게?"
"예, 충분히 살려주실 수 있으십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분들이라면 능히 우리 일꾼의 목숨을 살려줄 수 있고 말고입니다.
살리고자 하는 의지와
살릴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말입니다.

심각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그 분에게
제가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 대표가 제 손에 있는 것을 살펴보더니 푸하하하핫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얼마 후에 가 보니, 그분들이 산지기집 귀한 일꾼 하나의 목숨을 살려놓았습니다.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그 일꾼은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완전히 끝내야 했을 것입니다.

<목숨>이란 말 그대로 목에 붙어 있는 숨입니다.
산지기집에는 열 개도 넘는 호미 중에 멀쩡한 호미가 두 개 뿐인데
그 중 하나가 며칠 전 작업 도중에 목이 뚝 하고 금이 가버렸습니다.
나무 뿌리를 너무 세차게 걸고 당겼나 봅니다.
호미의 목숨은 그야말로 그 목에 달려 있습니다.
멋진 손잡이도, 날카롭고 잘 생긴 앞부분도 그 목이 아니면 말짱 헛것입니다. 
그야말로 곧바로 은퇴의 날이 된 것입니다.

연꽃마을 나무데크 산책길 난간 용접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간단한 일.
산지기집 귀한 일꾼 하나의 목의 숨을 이렇게 멋지게 되살려내었습니다.
곧바로 은퇴를 하고서 고물상에 넘겨질 운명의 그 일꾼이
조심해서 쓰면 앞으로 십년은 족히 그 사명을 이어갈 수 있을 호미가 되었습니다.  

 

산지기 일기 2009년 7월 7일자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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