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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먹고사는 양식

안산차도리 2009. 1. 30. 14:45

아내가 먹고사는 양식

 

                                                                                                                            박종원

 

“쨍그랑!”

부엌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열음에 놀란 식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식구들이 도착했을 때 아내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고,

부엌바닥 여기저기에는 유리 조각과 김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또 다시 일을 벌인 것이다.

남달리 조심성이 없었던 아내에게는 이 일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때때로 물을 틀어놓은 채 외출을 해서 집안을 온통 물바다로 만드는가 하면,

빨래를 삶겠다고 불 위에 올려놓은 채 잠이 들어서 빨래를 새까만 숯 덩이로 만들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언젠가는 문을 열어놓고 장을 보러 갔다가 집안의 귀중한 물건들을 모두 도둑맞은 일까지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가족들은 아내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 날도 가족들은 아내를 향하여 짜증 섞인 불평을 쏟아 부었다.

먼저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아니, 너는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

몇 번 큰 실수를 해서 낭패를 봤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해야지.

이렇게 매일 일을 벌이면 식구들이 불안해서 어떻게 살라는 거냐, 도대체!”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조심성 없이 행동해서 늘 집안을 시끄럽게 만드는 아내가 밉고 야속하기만 했다.

홧김에 나 역시 아내의 상처받은 마음에 고통을 더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살기에 매일 이렇게 말썽이냐고!

이렇게 말썽을 부릴 거면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말고 가만히 방구석에나 틀어박혀 있으라구!”

 

다음날 아침,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해 보이는 아내를 뒤로 한 채,

불편한 마음을 안고 직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차를 몰고 가면서도 의기소침해 있는 아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라디오에서 마치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이 나를 전율케 하는 한 마디의 말씀이 내 귓전을 때렸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아내입니다.”

 

매일 아침 9시 30분에 극동방송에서 방송되는 말씀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출근시간이 늦었던 나는 늘 차안에서 그 방송을 들어왔다.

하지만, 그 날의 말씀처럼 마음에 강하게 부딪혀 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라는데…

 

과연 나의 아내는 이날까지 무엇을 먹고살아 왔던가?

꽃다운 나이에 장남에게 시집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고생고생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아내에게 주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코끝이 찡해왔다. 그리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 날 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꽃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그게 웬 꽃이냐고 묻는 식구들의 말에 좀 쑥스러웠지만,

그 날은 아내를 위해서 얼마든지 그 쑥스러움을 참을 수 있었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온 나는,

나를 따라 들어오는 아내를 왈칵 끌어안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아내는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나는 더욱 힘을 주어 아내를 안았다.

그리고 아내의 귓전에 이렇게 속삭였다.

 

“난 정말 당신을 사랑해.

이제까지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의 쉼터가 되어줄게.”

 

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나의 셔츠는 아내의 눈물에 촉촉이 적셔지고 있었다. ♣

(월간쪽지 해와 달 2002년 12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