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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유효 기간

안산차도리 2010. 4. 27. 17:32

감사의 유효 기간

 

겨울철 일주일에 서너 번, 어린 아들과 함께 마음껏 놀아주기엔 아파트보다는 가까운 대형마트 무료 실내

놀이터가 적격입니다. 저녁시간엔 사람이 거의 없기에 말입니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집을 막 나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앗! 제주도의 박전도사님(여) 전화입니다.

안 그래도 대전에서 열리는 교사강습회에 참석하신다고 했는데…

박 전도사님은, 지금은 천국에 있는 딸아이와 함께 세 번이나 제주도여행을 했을 때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섬겨주셨던 분이시고, 딸아이 천국 가기 두 달 전 마지막 가족여행 때도 어김없이 저희를 위해 물심양면

으로 애써주셨습니다. 그 때는 물론 어린 아들도 동행했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박 전도사님께서 도움을 청하십니다.

이제 막 교사강습회를 마쳤는데, 그 다음날 군산에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그 저녁시간에

군산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마지막 버스가 끊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교통편과 더불어 혹시 모르니

청주에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 편을 인터넷으로 알아봐 달라셨습니다.

 

아빠와 신나게 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재작년에 우리 가족이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주셨던 여전도사님을 아느냐,

그분이 지금 이차저차해서 도움을 요청하니까 우리가 마땅히 도와드려야지 않느냐,

놀이터에 가는 것을 잠시 미룰 수 있겠지?

 

아들은 그 전도사님을 잘 기억한다며, 그렇게 하자고 기꺼이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차편을 알아보는 일이 잘 안 풀렸고, 아무래도 직접 우리 가 모시고 다니며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아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 때도 역시 전도사님으로부터 우리가 입은 은혜를 거론하며 이럴 때 우리가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설득하였습니다.

아들은 그것까지도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아들을 옆자리에 태운 채 전도사님을 만나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급히 서대전역으로 갔다가, 일이 잘못

되어 다시 동부 시외버스 터미널 쪽으로 가야 했습니다.

시계는 8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들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안절부절입니다.

9시가 놀이터 마감시간인데, 아빠와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젠 울먹입니다. “아빠, 벌써 아홉 시가 다 되어가요. 어떻게 해요?”

 

전도사님께 진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아빠의 설득의 약발이 다 떨어진 것입니다.

지금은 전도사님 도와드리는 게 문제가 아니고

아빠랑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노는 게 더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약」을 투입하기로 하고 설득에 나섭니다.

“아들, 전도사님한테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 오늘은 우리가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전도사님

 도와드리는 게 더 멋진 일인 거야. 우리가 제주도에 갔을 때 전도사님이 이틀 동안 얼마나 많이 우리를

 도와주셨어?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신세를 졌는데…”

 

그런데 뒷자리에 계시던 전도사님이 겸손의 표현으로 이러십니다.

“아, 아니예요. 제가 뭘… 해드린 것도 없는데…”

 

그런데 그 말씀이 아들의 불타는 가슴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습니다.

벌써 아홉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계를 바라보며 아들이 울먹이며 그럽니다.

“전도사님이 해준 것이 없다고 하시잖아요.”

 

헉! 이건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아아니, 그건 전도사님이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죠, 전도사님?”

 

바보! 그렇게 물으면 전도사님이 뭐라고 답하셔? “네!”하겠어?

박전도사님이 쭈뼛거리며 다시 이러십니다. “아, 아니예요, 제가 무슨 도움을 드렸다고…”

 

그러자 아들이 드디어 폭발했습니다.

“아빠, 전도사님이 아니라고 하시잖아요! 도와준 것이 없다고 하시잖아요!

 벌써 아홉 시가 다 되었단 말이예요! 으흐흐흐흑.”

 

ㅎㅎㅎ 제주도 박 전도사님의 은혜에 대한 약발이 한 시간 30분으로 끝났습니다.

결국 그날은 놀이터에 가지 못했는데, 아들은 삐쳐서 “앞으로 일주일동안은 아빠랑 놀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을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ㅎㅎ

 

오늘 문득,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사실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약발이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결국 고등학교 3학년에 휴학까지 하고서 절망에 빠져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하며

병 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내 영혼이 건짐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형벌에서의 구원은 물론이요,

그 때까지 나를 옭아매고 있던 온갖 쓰레기들(자학, 절망, 염세, 분노)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감격,

그리고 극적으로 관절염까지 완치되는 기적의 감격에 목 놓아 울었던 나…

 

그러나 그 감격이 사라지는 데엔 1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학 1학년 봄엔, 하나님을 떠났으니 말입니다. 8개월 정도의 방황 끝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왜 하나님을 떠났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던가? 물론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나? 그게 아니면 대학생이 되면서 치르는 영적인 사춘기였나?

확실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여하튼 「웃기는」이유로 영혼 구원의 감사,

병들었던 육신의 치유에 대한 감사의 약발이 끝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구원의 감격과 감사에 대한 약발이

어떤 이들의 경우엔 장교 남편의 진급 여부에서 끝나는 것도 보았고,

자식의 대학 입시 합격 여부에서 끝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좀 더 오래 가는 이들 가운데는, 자식이 다쳐서 불구가 되는 그 시점에서 약발이 끝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내외가 다 무척 신실한 교회 중직이었는데, 사랑하는 아들이 병에 걸려 결국 죽음에 이르자, 평소에 눈물로

간증하던 구원의 감사가 그 시점에서 끝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설령 이 세상에서의 내 인생이 절단 나고 모든 이들이 비웃는 지경에 처할지라도, 내 영혼이 영원한 저주와

형벌에서 건짐을 받은, 그리고 죄책감과 절망과 자학과 미움과 분노에서 건짐을 받은 그 감격과 감사의

크기에 어찌 견줄 수가 있을 것입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의 수준도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2010년 3월 갈릴리 해와 달 산지기의 편지에서 최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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