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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사입니다.

안산차도리 2009. 8. 27. 11:51

나는 목사입니다.
황대연_시화 한가족교회

 

새벽예배에 그가 왔습니다.
그는 공교롭게도 담임목사인 저하고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입니다.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둔 그는 시화공단의 축협 산하 사료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사료 값 인상 계획이 알려지자 밤을 새워 사료를 만들고 또 만들어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료 상인들의 요구를 댈 수가 없어서 아침 일곱시부터 밤 열한시까지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 빼고 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사료 먼지를 뒤집어 쓰며 일을 했습니다.
사료들은 만들기가 무섭게 다 나가고 사료상들의 아우성과 험악한 분위기로 일은 끝이 없었습니다.

 

오랜 실직의 방황 끝에 어렵사리 들어간 직장이고, 몇년을 그렇게 다녀 겨우 정규직이 된 그는 대부분

계약직에 비정규직인 직장 동료들 틈에서 '너 아니어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식의 회사에다

이제 그만둔다 해도 누구하나 눈 깜짝하지 않을 사십대 후반의 가장입니다.

 

아프다고 결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라인으로 공정이 되어 있는 직장은 그가 없으면 그가 해야 할 일이 쌓이고 다음 일이 진행이 안되기에

그는 함부로 아파서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일이 힘들었는지 새벽기도를 마친 자리에서
"목사님, 주님 앞에서 주일도 잘 못지키면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직장을 옮길까,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고... 암튼 고민이 많습니다."
사람 좋은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어제밤 열한시까지 일을 했으니까 오늘은 아홉시까지 출근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집사님, 해장국이나 먹으러 갑시다.
 저기 순댓국 맛있게 하는 집 내가 아는데..."
아직 어둠의 여운이 남아 있는 그 새벽에 그와 함께 24시 해장국집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는 뜨거운 국물을 훌훌 마시며 맛있게 먹습니다.
이심전심이라고 할까요...
서로 말이 없었지만, 마음은 서로 압니다.
식사 후에 저는 그와 함께 불가마 사우나로 향합니다.

 

뜨거운 물에 피곤에 찌든 몸을 함께 담그며,
"집사님,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예..."

 

그렇게 함께 기도하고, 이른 아침을 먹고, 목욕하고 출근하는 뒷 모습을 보며
목사의 자리를 생각합니다.
당장 뾰족하고 시원한 해답은 없는 현실이지만 목사의 격려를 담은 말 한마디에 힘을 내고
용기를 내는 성도들...
그래서 저는 오늘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나는 목사입니다...

 

큰숲 맑은 샘 2008년 8월호 About Cell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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