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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근성

안산차도리 2009. 8. 3. 22:00

거지 근성

 

                                                                                                                                        황대연

                                                                    <목사. 시흥 한가족교회. 인터넷 갈릴리마을 글방 가족> 

수년 전 어느 유명 출판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대부분인 80% 이상이 미자립(未自立) 교회라는 결과를 보았습니다.

 

미자립 교회.

 

미자립 교회란, 매월 목회자의 생활비를 챙겨 주기는커녕, 건물 임대료, 각종 공과금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그러니까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현상유지조차 어려운 적자상태의 교 회를 말합니다.

미자립 교회는 교인 수가 적은 개척교회이거나, 교인이 있더라도 교인들 대부분이 형편이 여의치 못해

재정이 약한 교회, 예를 들어 시골 오지의 교회, 장애인 또는 외국인근로자 선교회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럴 경우, 교단 내에서든지, 또는 교파를 막론하고 좀 규모가 있고 형편의 여유가 있는 교회들이 매월

얼마씩 후원을 하게 되고, 실제로 미자립 교회들에게는 이것이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섬기는 <한가족교회>는 2년 전인 2003년까지 미자립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규모는 적었어도, 재정적인 형편은 어려웠어도, 외부에서 돕는 손길이 그리 많지 않았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전도와 함께, 돌아온 한 영혼 한 영혼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기쁨과 보람으로

지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지난번 수안보에서 열렸던 총회의 교역자 수련회 때였습니다.

미자립 교회는 참가회비를 일부 할인해 준다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힘들게 목회현장에서 애쓰는 작은 개척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배려인 셈입니다.

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는 미자립 교회’임을 밝히고, 회비 중 몇 만 원의 할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어느 대형 교회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미자립 교회의 참 가비 할인혜택을 듣고는

또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린 ‘미자립교회’임을 밝히며 가능한 할인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옆에서 아내가 조용히 한마디합니다.

“여보… 미자립 교회가 뭐예요?”

“응…?”

저는 대답하려다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아내가 미자립 교회의 의미를 모를 리 없습 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미자립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교회의 성도 숫자는 많지 않지만, 금년부터는 목회자 생활비도 현실에 근접하게 맞추었고,

선교사님들 4가정을 비롯하여 국내 선교기관 2곳 등 매월 고정적인 후원금만 백 여만 원 가량 보내고

있으며, 후배들이나 개척을 준비하시는 동역자들을 만나면 호기롭게 식사도 대접하고, 작은 봉투도

드릴 수 있도록, 교회 예산 중에 담임목사인 내 앞으로 얼마간의 목회활동비도 책정해 놓을 정도로

규모가 잡혀가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스스로 미자립 교회임을 자처하고 다니는 것일까.

아… 그것은 나도 모르게 그동안 몸에 배어 있는, 개척교회 목사로서의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약자의식” 내지는, 좀 심하게 말하면 “거지근성” 때문이었습니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은 개척교회를 목회하다보니 물건을 사더라도, 싸게 준다 해도 꼭 깎아야

직성이 풀리고, 제 값 주고 사는 새 제품보다는 다만 얼마라도 싼 중고품을 구입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합

니다. 사실, 중고품은 얼마 되지 않아 고장이 곧잘 나곤 해서 수리비를 따지면 그게 그건데도 말입니다.

이젠 나 자신을 위해 무슨 새로운 물건 따위를 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세미나 등 애써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가 있는 것들은, 안 가려면 모르거니와 필요를 느끼고 가야 하는 것들이라면 제 값을 주고

참가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물건 구입 전에는 신중하게 생각하되, 꼭 사야할 물건이라면 조금 더 주더라도 기왕

이면 좋은 것으로, 고장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구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내 속, 의식 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알뜰함’과는 구별되는 어떤 ‘거지근성’들이 뿌리째

뽑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

 

                                                                                                    월간 쪽지 '해와 달'  200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