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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없는 땅으로~

안산차도리 2009. 3. 10. 16:07

복 없는 땅으로

 

 

아브라함이 부름 받아 간 곳은 광야였다.

여태껏 익숙했던 메소포타미아 그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낯설고 물선 땅,

알지 못하는 광야로 보냄을 받았다.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되는 아브라함. 하지만 정작 그가 간 곳은 복 있는 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복 없는 땅, 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복을 전해주고 가르쳐줄

복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 땅을 전부 하나님이 주셨건만 그의 거처는 조그마한 이동식 천막이 전부였다.

 

아들 이삭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다.

우물을 두고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그는 자기가 판 우물을 양보하고 또 딴 데 가서 우물을 팠다.

그 역시 좋은 우물이 있는 복된 땅을 찾아간 게 아니라 복 없는 땅, 우물 없고 물 없는 땅을 찾아 돌아

다녔다. 그리곤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고 복을 심었다.

그 역시 복의 근원, 복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야곱도 외삼촌댁에서 고단한 타향살이를 했다.

아버지의 복된 집 브엘세바를 떠나 복 없는 하란 땅 밧단아람으로 갔다.

거기서 하나님도, 복도 모르고 살아가던 그 땅에 복을 심었다.

이방인인 외삼촌 라반은 야곱의 덕에 떼부자가 된다.

야곱 역시 복의 근원이자 복의 통로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는 광야를 경험하지 않고 아버지가 살던 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복의 근원이 아닌 그는, 복 있는 땅, 부유한 땅에서 안락하게 살면서 굳이 복 없는 땅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는 이 땅에서는 안락하고 편안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축복의 라인에서 제외되었고,

그의 자손들 역시 복의 근원, 복의 통로는 되지 못했다.

 

요셉은 타향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그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복 있는 땅 가나안의 아비 집에서 복 없는 이방 땅 이집트로 팔려갔던 그의 삶 역시 복의 통로,

복의 근원이었다.

우린 안다. 요셉,

그로 인해 이집트는 7년간의 대기근 시기에 이웃국가들에게까지 곡식을 공급해주는,

담을 넘는 넉넉한 축복을 받은 나라가 되었던 것을 말이다.

그 한 사람에 의해 이제까지 복 없는 땅에서 복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복을 받았다.

축복을 몽땅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이렇듯 복의 근원, 복의 통로이다.

복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은 복 없는 땅을 찾아가서 복을 심어주는 사람들이다.

굳이 복 있는 땅으로 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물 없는 광야에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강남으로, 서울로, 미국으로, 복 있는 땅으로 복을 찾아 떠난다.

이럴 때 복 없는 땅을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 갈 곳은 복 있는 땅이 아니라, 복 없는 땅이다.

복 없는 땅에 가서 복의 근원이 되는 것,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아닐까.

 

김동호 목사님의 얘기가 생각난다.

김 목사님의 아들이 한동대를 다니던 도중에 다른 학교로 편입하려고 했다.

이유를 묻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말한다. “선배가 없어서, 선배가 좋은 학교로 옮기고 싶다”고.

당시 한동대는 이제 막 설립된 대학교였다. 그때 아버지의 얘기는 이랬다.

“나는 네가 학교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학교가 네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복 없는 땅에 가서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이기에 말이다. ♣

 


한의사.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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