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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안산차도리 2013. 3. 13. 16:31

  <사진캘리그라피 출처는 임정수디자인>

 

 

그는 40대 힘없는 가장입니다.

구조조정 물살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에선 아무런 내색도 할 수가 없습니다.

속이 타면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 희망도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상관의 질책과 무거운 업무에 시달리고 아랫사람 윗사람 눈치보며 이리저리 치이고 눌려서

그는 점점 작아져만 갔습니다. 


그의 아내 역시 불행했습니다.
"휴, 또 적자야."
구멍난 가게부가 싫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구차한 살림이 싫고, 돈을 더 펑펑 쓰고

싶었습니다. 생각하면 가슴이 자꾸만 팍팍해져 갔습니다.

이렇게 살려고 결혼을 한 건 아닌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한땐 행복했었는데....
이래저래 늘어가는 건 짜증과 주름살뿐, 짧은 대화조차도 부부의 식탁을 떠난 지 오랩니다.

결혼기념일, 아침부터 토라져 얼굴을 붉히고 있는 아내에게 그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기

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신! 나랑 같이 갈 데가 있어."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을 따라 나섰습니다.

 

내심 아내는 백화점 쇼핑이나 근사한 외식을 기대했지만 그가 아내를 데려간 곳은 백화점도

레스토랑도 아니었습니다.

얼음집, 쌀집, 구멍가게가 죽 늘어서 있고, 게딱지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곳은

부부가 신혼살림을 차리고 장밋빛 달콤한 꿈을 꾸던 달동네였습니다.

부부는 세들어 살던 쪽방을 찾아갔습니다.

그 창 너머로 부부가 본 것은 초라한 밥상 앞에서도 배가 부르고 아이의 재롱만으로도 눈물

나게 행복한 아내와 남편, 바로 10년전 자신들이었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아내가 소매끝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첫마음을 잊고 살았군요."
"그래, 첫마음." 

첫마음. 그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들 내가 해야 할 일들 남편과 아내로서 부모 혹은 자식으로서

그리고 내가 속한 단체의 일원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이

무겁고 고단하게 느껴질 때 ‘첫 마음’을 먼저 생각합니다.

처음 당신을 만나 사랑을 맹세했던 그 날
갓 태어난 아이를 처음 안아보고 감격스러웠던 그 날
신입사원이 되어 설렘 반, 떨림 반으로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 날........
그 날 내 마음 속에 다짐했던 약속과 다짐들 ‘첫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서울교대 교육대학원 계숙희 교수 페이스북 강의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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